간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독소는 곧바로 뇌로 향한다
건강한 강아지의 간은 수많은 독소와 대사물질을 해독하고 영양소를 처리하는 필수 기관이지만, 선천적인 해부학적 이상으로 인해 간을 거치지 않은 혈액이 바로 전신으로 흘러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 결과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 특히 소형견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희귀 간 질환 ‘선천성 문맥전신단락증(Portosystemic Shunt, PSS)’은 간으로 유입돼야 할 혈액이 간을 우회하여 곧바로 전신 순환계로 빠져나가면서, 대사되지 않은 독소와 암모니아, 약물, 호르몬 등이 뇌를 포함한 다양한 장기에 축적되는 구조적 문제이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신경계 이상, 성장 지연, 간성 혼수 등의 증상은 평범한 행동 변화로 시작되지만, 어느 순간 생명을 위협하는 단계로 악화된다. 보호자 입장에서는 단순히 “활력이 없다”, “밥을 잘 안 먹는다”, “간식을 먹으면 이상해진다”는 정도로 인식되기 쉽지만, 그 뒤에는 간 해독 시스템의 실패와 신경 독성의 축적이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자리잡고 있을 수 있다. 이 질환은 조기 진단과 함께 정확한 수술 계획이 병행되지 않으면, 빠른 시간 안에 강아지의 삶의 질을 급격히 저하시킬 수 있다.
문맥전신단락증이란 어떤 구조적 이상인가
PSS는 복부 내 소화기관에서 흡수된 영양소와 독소가 간을 통과하지 않고 전신 혈류로 직접 빠져나가는 해부학적 이상을 말한다. 정상적인 혈류에서는 장과 비장 등에서 발생한 정맥 혈액이 문맥(portal vein)을 통해 간으로 들어가 해독과 대사 과정을 거친 뒤, 간정맥을 통해 하대정맥으로 들어가 전신으로 이동한다. 하지만 PSS에서는 이 문맥 혈류가 간을 거치지 않고 신체의 다른 정맥, 주로 후대정맥이나 대순환계 정맥으로 직접 빠져나가기 때문에, 간은 대사 활동을 거의 수행하지 못하게 된다. 이로 인해 혈중 암모니아 수치가 급격히 상승하고, 단백질 대사물, 호르몬, 약물, 박테리아 독소 등이 그대로 뇌, 심장, 폐, 신장 등으로 유입된다.
PSS는 크게 선천성과 후천성으로 나뉘는데, 선천성 PSS는 출생 직후부터 이상이 존재하는 경우로, 대부분 단일 혈관 단락이며, 소형견에서 자주 발생한다. 대표적인 고위험 품종으로는 요크셔테리어, 말티즈, 치와와, 포메라니안, 시추, 케언 테리어, 파피용, 웨스트하이랜드화이트테리어 등이 있다. 대형견에서도 간혹 발견되며, 이 경우에는 간 내 단락이 많고 증상이 더 늦게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후천성 PSS는 간경변이나 문맥 고혈압 등의 만성 간 질환이 원인이 되어 혈류가 차단되었을 때 생기는 보상성 혈관으로, 선천성과는 진단 및 치료 접근이 완전히 다르다. 보호자가 인식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이 질환이 장기의 기능 문제가 아닌 ‘혈류 경로 자체의 문제’이며, 해독 기능이 살아 있어도 간으로 혈액이 들어가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는 점이다.
선천성 문맥전신단락증 증상은 신경계 이상부터 간 기능 저하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PSS의 가장 특징적인 증상은 간성 뇌병증(hepatic encephalopathy)으로 인한 신경학적 이상이다. 암모니아 등 독소가 간에서 해독되지 않고 그대로 뇌로 이동하면서 신경계를 자극하고 혼란을 유발하게 된다. 보호자는 강아지가 갑자기 멍해지거나, 눈동자가 떨리고, 중심을 못 잡고 비틀비틀 걷는다든지, 물체에 부딪히거나 침을 흘리는 모습을 보면서 이상하다고 느끼게 된다. 이때 간식을 먹은 직후 또는 고단백 식사 후 증상이 악화된다면, 간성 혼수를 의심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또 갑자기 하울링을 하듯 울거나, 의식이 혼미해지고 경련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으며, 그 순간 뇌는 독성 물질로 과도한 자극을 받은 상태일 수 있다.
이 외에도 성장이 더디거나 체중이 잘 늘지 않고, 식욕이 불안정하며, 구토와 설사, 복부 팽만, 무기력 같은 소화기 증상이 반복된다면 PSS를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일부 강아지는 요로결석, 특히 요산염 결석이 반복되며 방광염이나 혈뇨가 자주 발생하기도 한다. 이는 질소 대사물질의 농도가 높아지면서 신장에서 재흡수되지 못하고 결정화되기 때문으로, PSS의 간접적인 지표가 될 수 있다. 증상이 심해지면 황달, 복수, 근육 위축, 피부 탄력 저하 등 간부전 증상도 나타나며, 혈액 응고 장애로 인해 출혈 경향이 생기기도 한다. 보호자가 이런 증상들을 개별적으로 보기보다, ‘평소보다 뭔가 정신이 없고, 배도 불룩한데 먹는 양은 많지 않다’는 종합적인 관찰을 통해 이상을 빨리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선천성 문맥전신단락증 진단은 혈액검사와 정밀 영상진단으로 확정된다
PSS는 진단이 쉽지 않지만, 몇 가지 핵심 지표를 통해 강력하게 의심할 수 있다. 가장 먼저 혈액검사에서는 혈중 암모니아 농도 상승, 저혈당, 저알부민혈증, 고간효소혈증(ALT, ALP 상승), 콜레스테롤 저하, 총 단백질 감소, 백혈구 수치의 비정상적 변화 등이 관찰된다. 특히 식후 2시간 후 암모니아 수치가 급격히 올라가고, 총 담즙산 수치가 높게 유지되는 경우 간문맥 순환 이상을 강하게 시사한다. 그러나 이러한 검사만으로는 단락의 존재와 위치를 명확히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정밀 영상 진단이 필요하다.
초음파 검사는 혈류의 방향과 속도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간 실질의 위축, 비정상적인 혈관 분포, 간내 문맥혈류 감소 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복부 초음파만으로는 단락 혈관의 위치를 명확히 구별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복부 CT(조영제 포함) 또는 간문맥 조영술(portovenography)이 진단의 골드 스탠다드로 활용된다. 이 검사를 통해 단락 혈관의 위치, 크기, 방향 등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으며, 수술 가능 여부와 전략 수립에 결정적 정보를 제공한다. 또한 PSS와 감별해야 할 질환으로는 간섬유증, 기타 선천성 대사질환, 후천성 문맥 고혈압 등이 있으므로, 진단 과정은 반드시 전문 수의내과 또는 외과의 협진 하에 진행되어야 한다.
선천성 문맥전신단락증 치료는 수술이 유일한 근본 해법이며, 사전 안정화가 생명을 좌우한다
선천성 PSS의 근본적 치료는 외과적 수술을 통한 단락 혈관의 폐쇄이다. 수술의 목적은 비정상적인 혈류를 차단하고, 정상적인 간 문맥 순환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단락 혈관이 하나뿐이고 간문맥의 발달이 충분한 경우, 수술을 통해 완치에 가까운 회복이 가능하다. 대표적인 수술 방법으로는 셀로판 밴딩(cellophane banding), 아메로이드 컨스트릭터(ameriod constrictor) 삽입 등이 있으며, 이들은 단락 혈관을 서서히 좁혀 폐쇄하는 방식으로 간에 무리 없이 혈류를 되돌릴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갑작스러운 폐쇄는 간문맥 고혈압이나 간부전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서서히 조절되는 방식이 선호된다.
수술 전에는 반드시 신경계 증상, 전해질 이상, 저혈당 등의 상태를 약물로 안정화시키는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간성 뇌병증을 줄이기 위해 락툴로오스(lactulose), 항생제(메트로니다졸 등), 저단백 처방식 등을 사용하며, 체내 암모니아를 최대한 낮춘 상태에서 수술에 들어가야 예후가 좋다. 수술 후에는 간 기능 회복 여부에 따라 약물 조절, 식이 조정, 간 효소 모니터링, 영상 재검사 등이 병행되어야 하며, 일부 강아지는 수술 후에도 간 문맥 발달이 부족하거나 합병 혈관이 생겨 재수술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중요한 것은 수술이 성공했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간 기능이 완전히 회복되는 데는 수개월이 걸릴 수 있으며, 그동안은 저단백 고소화성 식단, 항암성 항산화 영양소 보충, 정기적인 혈액검사와 초음파 모니터링이 필수적이다. 보호자는 강아지의 식욕, 행동, 호흡, 배변 상태 등 일상 전반을 관찰하며, 작은 변화에도 즉시 수의사와 상담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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