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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희귀 질병

강아지의 희귀 내분비 질환 ‘부신성 위기(Addisonian Crisis)’의 징후와 응급 대응

부신성 위기 평소 무기력했던 강아지가 갑자기 쓰러졌다면, 심장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강아지가 어느 날 갑자기 힘없이 주저앉거나, 평소보다 더 무기력해지고 식욕이 급격히 저하되며 구토나 설사를 동반했다면 대부분의 보호자는 감기, 장염, 혹은 단순한 컨디션 저하로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증상이 단시간 내에 진행되고, 숨이 가빠지거나 실신하듯 쓰러진다면 그건 단순한 컨디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특히 이런 상황이 평소 조용하고 예민했던 성격의 강아지에게서 갑작스럽게 나타났다면, 보호자는 반드시 내분비계의 중대한 문제, 그중에서도 ‘부신성 위기(Addisonian Crisis)’를 고려해야 한다. 이 질환은 부신피질 기능 저하증(애디슨병, Addison’s disease)이 급성으로 악화되어 생기는 응급 상황으로, 강아지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내분비 위기 상태이다. 평소에는 경미한 증상만 보이다가 스트레스를 계기로 갑작스럽게 쇼크 상태에 빠지는 것이 특징이며, 조기에 인식하지 못하고 치료가 늦어질 경우 사망률이 매우 높은 질환이다. 무엇보다 이 질병은 너무 조용히, 너무 흔한 증상으로 시작되기 때문에 보호자의 인식이 생사를 가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된다.

강아지 희귀 내분비 질환 부신성 위기 Addisonian Crisis 징후

부신 기능이란 무엇이고, 왜 갑자기 위기로 발전하는가

부신은 신장의 상부에 위치한 작은 내분비 기관으로, 강아지의 몸에서 매우 중요한 두 가지 호르몬인 코르티솔(스트레스 조절)과 알도스테론(수분 및 전해질 균형 조절)을 생성하는 역할을 한다. 부신 기능이 저하되면 이 두 호르몬이 정상적으로 분비되지 않아 강아지의 체내 항상성이 급격히 무너지고, 수분 손실, 전해질 불균형, 저혈당, 순환기 장애 등이 연쇄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애디슨병은 이 부신 기능이 서서히 저하되며 만성적으로 진행되는 내분비 질환이지만, ‘부신성 위기’는 이 만성 상태가 어떤 계기로 인해 급격히 악화되어 쇼크 상태로 빠지는 급성 응급 상황을 말한다. 보통 심한 스트레스, 감염, 탈수, 수술, 외상, 과도한 흥분 등이 촉발 요인이 되며, 평소에는 미약하게 버티고 있던 호르몬 시스템이 급격히 붕괴되면서 신체는 순식간에 위기를 맞게 된다.

특히 알도스테론 부족은 나트륨의 재흡수를 막고, 칼륨의 배설을 억제하여 전해질 균형을 무너뜨리며, 이로 인해 심박수 저하, 심장 리듬 이상, 심한 경우 심정지로 이어질 수 있다. 코르티솔이 부족하면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이 마비되고, 혈압이 유지되지 않으며, 혈당이 급격히 떨어지는 저혈당성 혼수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병리적 연쇄 반응은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무기력, 설사, 구토로 시작되지만, 실제로는 생명을 위협하는 위기 상태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다.

부신성 위기 증상은 흔하지만, 그 조합은 위기의 전조가 된다

부신성 위기의 증상은 놀랍도록 일반적인 형태로 시작된다. 식욕 저하, 무기력, 구토, 설사, 체중 감소, 활력 저하 등 대부분 보호자가 익숙하게 여기는 증상들이다. 하지만 이 병의 무서운 점은 이러한 ‘흔한 증상’들이 거의 동시에, 그리고 갑작스럽게 악화된다는 점에 있다. 특히 강아지가 평소보다 물을 많이 마시거나 소변량이 많아지는 다갈다뇨 증상이 함께 나타나고, 심박수가 느려지며, 점막이 창백해지고 잇몸을 눌렀을 때 색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즉시 내원해야 한다. 체온이 떨어지고 배를 움츠리며 웅크리는 자세를 보일 경우 복부 통증이 있는 상태로, 이미 내장 장기의 순환이 저하되기 시작한 상태일 수 있다.

가장 위급한 신호는 실신 혹은 무기력 상태로 쓰러지는 것이며, 이는 순환기계가 거의 기능을 잃은 상태로 ‘애디슨 쇼크’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보호자 입장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점은 이러한 증상들이 때때로 좋아지는 듯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질환의 본질은 급속도로 악화되는 호르몬 붕괴이므로, 증상이 호전된 것처럼 보이더라도 언제든 다시 위기로 전환될 수 있다. 또한 일부 강아지는 처음에는 단지 스트레스 상황에서만 증상을 보이고 평소에는 정상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간헐적 증상’이 바로 위기를 예고하는 경고 신호일 수 있다는 점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

부신성 위기 진단은 전해질 불균형과 호르몬 분석으로 확인한다

부신성 위기의 진단은 혈액 내 전해질 수치와 호르몬 반응 분석을 통해 이루어진다. 가장 특징적인 혈액검사 소견은 나트륨 수치 저하(hyponatremia)와 칼륨 수치 상승(hyperkalemia)의 조합이다. 이 두 전해질의 비율(Na:K ratio)이 27 이하로 떨어질 경우 부신기능 저하증을 강력하게 시사하며, 대부분의 위기 사례에서 이 수치는 기준치를 크게 벗어난다. 함께 관찰되는 증상으로는 저혈당, 저혈압, 고질소혈증(BUN 상승), 빈혈 등이 있으며, 심전도 검사에서는 심박수 감소와 함께 T파의 이상이나 심실성 부정맥이 나타날 수 있다.

확진을 위해서는 부신피질 자극 호르몬(ACTH) 자극 테스트가 필요하다. 이 검사는 ACTH를 외부에서 투여한 후 일정 시간 내에 코르티솔 수치가 얼마나 증가하는지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부신이 제 기능을 하고 있다면 수치가 상승해야 한다. 하지만 애디슨병을 앓고 있는 강아지의 경우 코르티솔 수치가 거의 변화하지 않거나, 극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된다. 진단이 확정되면 즉시 치료가 시작되어야 하며, 위기 상태의 경우 진단과 동시에 수액요법과 스테로이드 투여가 병행되어야 한다. 보호자는 증상이 일반적인 장염이나 위장 질환처럼 보이더라도, 혈액검사에서 전해질 수치의 이상이 발견되면 반드시 부신기능 저하증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의사와 협의해 추가 검사를 진행해야 한다.

부신성 위기 응급 치료는 빠를수록 생존 가능성이 높아진다

부신성 위기의 치료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위기 상태에 빠진 강아지는 순환 기능이 급격히 저하되어 있고, 장기 혈류가 감소하고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빠른 수액 공급과 스테로이드 투여가 중요하다. 보통 고장성 수액이나 정맥 알부민을 통해 전해질 균형과 혈압을 회복시키며, 동시에 정맥주사로 데소메타손 또는 하이드로코르티손과 같은 글루코코르티코이드를 투여하여 부족한 코르티솔을 보충한다. 칼륨 수치가 위험 수준인 경우에는 칼슘글루코네이트, 인슐린-포도당 병용 요법 등을 통해 신속히 수치를 낮춰야 하며, 심한 경우에는 응급 산소 공급, 항부정맥제 투여, 집중 모니터링이 병행된다.

응급 치료 이후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면 평생 복용해야 하는 약물 치료가 시작된다. 일반적으로는 플루드로코르티손이나 DOCP(데옥시코르티코스테론 피바레이트)와 같은 미네랄코르티코이드 제제와 프레드니솔론 등의 글루코코르티코이드 제제를 함께 사용하며, 체중, 전해질 상태, 스트레스 상황에 따라 용량을 조절한다. 스트레스 상황이나 수술 전후에는 코르티솔 보충량을 일시적으로 증량해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혈압, 혈당, 전해질 수치를 정기적으로 점검하면서 약물 용량을 미세 조정해야 한다. 이 병은 약물 복용과 수의사의 지속적 관찰이 전제되어야 하며, 보호자가 복용을 중단하거나 임의로 조절할 경우 언제든 다시 부신성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 평생 조절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보호자의 인식 변화와 책임 있는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