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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희귀 질병

반려견 희귀 신경 질환 ‘운동실조증(Cerebellar Ataxia)’의 증상과 관리

비틀거리는 걸음걸이, 단순한 노화가 아닐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반려견이 걷는 모습이 달라졌다고 느끼는 보호자들이 있다. 이전에는 곧게 걷던 강아지가 마치 술에 취한 사람처럼 휘청거리거나,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다리를 과도하게 들어 올리고, 방향을 바꾸는 데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이면 대부분 보호자는 처음에는 다리 통증이나 근육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증상이 며칠씩 이어지고, 넘어지거나 벽에 부딪히는 일이 반복되면 문제는 단순히 사지의 문제가 아니라 중추신경계 문제일 가능성이 있따.

운동실조증(Cerebellar Ataxia)은 이런 증상을 대표하는 희귀한 신경계 질환이다. 이 질환은 말 그대로 ‘운동 조절의 혼란’을 의미하며, 강아지의 평형감각, 보행, 자세 조절 능력이 손상되었을 때 나타난다. 특히 소뇌(소뇌피질) 기능 이상이 주 원인으로 작용하며, 신체의 정확한 위치 감각이 왜곡되어 몸을 의도한 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다. 이 질환은 선천적일 수도 있지만, 외상, 염증, 종양, 감염, 퇴행성 질환 등 다양한 원인으로 후천적으로도 발생할 수 있다.

겉으로는 단순히 ‘좀 불편한 걸음걸이’ 정도로 보일 수 있지만, 실은 뇌신경계 기능이 광범위하게 손상되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조기 진단이 늦어질 경우 신체 전반의 운동 능력 저하, 식사 곤란, 쓰러짐, 뇌압 상승 등의 2차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반드시 정밀한 진단과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하다.

반려견 희귀 신경 질환 운동실조증 증상 관리

소뇌와 신경계의 미세한 균형이 무너질 때

운동실조증은 다양한 형태로 나뉘지만, 가장 흔한 유형은 ‘소뇌성 운동실조’이다. 이는 소뇌에 존재하는 푸르킨예세포(Purkinje cell)와 같은 중요한 신경 세포들이 손상되거나 소멸되었을 때 발생한다. 소뇌는 몸의 균형, 근육 조절, 움직임의 정확성과 속도를 미세하게 제어하는 역할을 한다. 이곳에 손상이 생기면 신체가 자신의 움직임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게 되어, 다리를 과도하게 들어 올리거나, 한쪽으로 중심을 잃고 넘어지며, 머리를 흔들고 걷는 등의 이상행동이 발생한다.

이 질환은 유전적으로 유발되기도 하며, 특정 품종에서 발병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대표적으로 아메리칸 스태퍼드셔 테리어, 코커 스패니얼, 스무스 폭스 테리어, 고든 세터, 보더 콜리 등에서 선천성 소뇌 위축증이 보고되고 있다. 이러한 선천적 형태는 보통 생후 몇 주부터 몇 개월 사이에 증상이 나타나며, 평생 동안 증상을 가지고 살아간다.

후천적인 원인으로는 외상성 뇌손상, 소뇌 내 출혈, 바이러스 감염(예: 개 디스템퍼 바이러스), 독소 중독, 뇌종양, 염증성 뇌질환, 또는 뇌 내 혈류 장애 등이 있다. 특히 나이가 많은 반려견에게는는 뇌 조직의 자연스러운 위축이나, 만성적인 염증, 종양에 의한 압박이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으니 노령견에게는 주의가 필요로 한다.

중요한 점은 이 질환이 단일 원인에 의해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전적 소인이 있는 경우 외부의 자극이나 감염, 스트레스가 촉매 역할을 하여 증상을 가속화하거나 조기에 발현시킬 수 있다.

걸음걸이, 눈의 움직임, 고개 흔들림… 다양한 이상 증상들

운동실조증의 가장 특징적인 증상은 ‘비정상적인 걸음걸이’다. 보호자들은 대개 이를 가장 먼저 감지한다. 강아지가 걷는 도중 중심을 잘 잡지 못하거나, 다리를 쭉 뻗은 채 땅에 툭툭 내리찍듯 걷는 모습, 평지에서도 넘어지는 모습, 급회전을 못 하거나 방향 전환 시 비틀거리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이를 ‘고유수용성 실조’ 또는 ‘소뇌성 실조’라고 한다.

또한, 머리를 좌우로 흔들거나 앞뒤로 반복해서 움직이는 모습, 소위 ‘고개 흔들림(tremor)’도 소뇌 이상과 관련이 깊다. 이는 뇌가 근육의 수축과 이완 타이밍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해 나타나는 증상이며, 휴식 시에는 없지만 물을 마시거나 먹이를 집을 때처럼 미세한 움직임이 필요한 순간엔 증상이 심해진다.

눈동자의 움직임이 비정상적으로 빨라지는 ‘안진(nystagmus)’, 특정한 자세에서 몸이 떨리거나 경련하는 증상도 관찰될 수 있으며, 심한 경우에는 뒷다리가 마비되는 듯한 보행 패턴이나, 쓰러졌다가 금방 일어나는 ‘비틀거림 후 회복’ 증상도 함께 나타난다.

식사 중 입 안으로 정확히 사료를 넣지 못하고 바닥에 흘리거나, 물그릇에서 입을 떼지 못하고 반복해서 입술로 튕기듯 움직이는 모습도 있을 수 있다. 이는 움직임의 정확성 부족에서 기인한 행동으로, 보호자는 단순한 식욕 부진이나 치아 문제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증상은 개별적으로 볼 때 단순히 ‘나이 들어서 그렇겠지’ 혹은 ‘한두 번 넘어졌을 뿐’으로 보일 수 있지만, 복합적으로 연결해보면 명백한 신경계 이상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진단은 신경계 전체의 퍼즐을 맞추는 과정

운동실조증의 진단은 비교적 복잡하고 정밀하게 진행된다. 단순한 증상만으로는 정확한 원인을 특정할 수 없기 때문에, 여러 검사를 병행해야 한다. 먼저 보호자가 제공하는 병력과 증상의 발현 시기, 진행 속도, 평소 행동 패턴 등이 중요하다. 선천성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생후 몇 주부터 이상 증상이 있었는지를 파악하며, 유전적인 계보나 품종의 발병 사례도 고려된다.

신체검사에서는 일반적인 신경학적 평가가 시행된다. 반응속도, 균형 유지 능력, 자세 반사, 보행 관찰 등을 통해 이상 신호를 평가하며, 이상이 있다면 뇌 자체의 문제를 강하게 의심하게 된다.

영상검사는 진단의 핵심이다. MRI는 소뇌의 위축, 염증, 출혈, 종양 여부 등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CT는 골조직이나 내부 구조 변화 확인에 유리하다. 또한 혈액검사를 통해 감염성 뇌염, 자가면역성 질환, 간성 뇌병증 등의 가능성도 배제해야 하며, 필요한 경우 뇌척수액을 채취해 염증세포 유무와 단백질 농도를 분석하기도 한다.

특히 바이러스 감염이 의심되는 경우, PCR이나 항체 검사를 통해 디스템퍼 바이러스와 같은 원인 병원체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단순한 소뇌 위축인지, 바이러스성 신경염인지, 종양성 질환인지, 혹은 유전적 실조증인지 명확히 구분할 수 있다.

정확한 진단은 예후 판단과 치료 전략 결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 어떤 형태의 운동실조증이든 조기 진단이 이루어질수록 증상 악화를 지연시키고,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치료보다 관리가 핵심, 함께 살아가는 방식 찾기

운동실조증은 대부분 완치가 불가능한 만성 신경계 질환이다. 원인에 따라 치료 가능 여부가 달라지지만, 선천성 또는 유전성 소뇌 위축증은 점진적으로 진행되며, 약물로 근본적인 완치는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증상 조절과 삶의 질 개선을 목표로 한 관리 전략으로 반려견의 상태가 충분히 호전될 수 있다.

가장 먼저 신경기능을 보호하는 항산화제, 신경영양 보조제, 비타민 B군 등을 꾸준히 공급해 신경 퇴화를 늦출 수 있다. 염증이 동반된 경우에는 스테로이드나 면역억제제가 사용될 수 있으며, 감염성 요인이 확인되면 항바이러스제 또는 항생제를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또한 소뇌 내압 상승이나 수두증이 함께 있는 경우에는 뇌압 조절제나 수술적 접근도 고려된다.

생활환경의 변화도 반드시 필요하다. 미끄러지기 쉬운 바닥은 모두 미끄럼 방지 매트로 교체하고, 먹이 그릇은 고정형이나 높이가 조절되는 형태를 사용해 목과 몸통의 부담을 줄여야 한다. 또한 계단이나 베란다, 높은 가구 등에서 떨어질 위험이 없도록 구조를 변경하고, 실내 공간은 최대한 단순하게 유지해 반려견에게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산책은 반드시 보호자가 함께 조절하며, 중심이 흔들릴 경우 하네스 또는 이동 보조기구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장시간의 산책보다 짧고 규칙적인 자극을 주는 것이 효과적이며, 근육의 위축을 방지하기 위한 간단한 물리치료도 병행할 수 있다. 이외에도 음식 섭취가 어려운 경우에는 소프트푸드나 튜브 보조 급여도 고려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보호자의 태도다. 운동실조증은 진행성 질환이지만, 증상의 속도와 강도는 개체마다 다르며, 조기 발견과 세심한 관리가 병행된다면 아이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은 충분하다. 걸음이 흔들리고 먹는 속도가 느리다고 해서 슬퍼할 필요는 없다. 그 속도를 함께 걸어주고, 기다려주고, 그 시간을 따뜻하게 채워주는 것이 보호자의 몫이니 내 반려견을 사랑하는 만큼 이해해주고 함께 해줄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