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희귀 질병

반려견 희귀 질환 ‘성장호르몬 결핍증’의 증상과 관리

gerrard93 2025. 7. 24. 10:00

자라는 속도가 느린 강아지, 그냥 체구가 작은 게 아닐 수 있다

강아지를 입양한 뒤 또래 개들에 비해 유난히 몸집이 작고, 털이 잘 자라지 않으며 활력도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면 단순히 성장이 느린 아이로 넘겨버리기 쉽다. 특히 소형견의 경우 개체별로 크기 편차가 크기 때문에 보호자는 눈치채지 못하고 시간이 흘러버리곤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몸집이 작고, 유치가 늦게 빠지며, 체형이 어린 강아지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성장호르몬 결핍증’을 의심할 수 있다. 이 질환은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성장호르몬(GH, Growth Hormone)이 부족해 강아지의 체격, 털, 치아, 성호르몬 발달 등 전반적인 성장이 정체되는 희귀 질환이다. 겉으로는 단순히 작고 귀엽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실제로는 내분비계의 불균형이 몸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조기에 발견하지 못할 경우 성장이 완전히 멈춰버리거나, 장기 기능 이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반려견 희귀 질환 성장호르몬 결핍증

호르몬의 흐름이 멈추었을 때 벌어지는 일

성장호르몬은 강아지의 성장판을 자극해 뼈가 자라고, 단백질 합성이 활발해지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이 호르몬은 주로 수면 중에 분비되며, 간접적으로는 인슐린유사성장인자(IGF-1)라는 또 다른 성장 촉진 물질의 생성에도 관여한다. 그런데 뇌하수체라는 아주 작은 뇌 부위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으면 이 성장호르몬이 거의 분비되지 않거나 매우 적게 생성된다. 이런 상태가 어릴 때부터 지속되면 신체는 외형적으로 자라지 못하고, 내부 장기 역시 충분히 발달하지 못해 몇몇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

이 질환은 선천성 뇌하수체 기능저하증(Pituitary Dwarfism)과 관련이 있다. 대표적으로 저먼 셰퍼드에서 유전적으로 자주 보고되며, 카나안 도그, 스파니엘, 킨 찰스 캐벌리어, 웨스트하이랜드 화이트 테리어 등에서도 사례가 있다. 유전자는 열성 형질로 전달되는 경우가 많아 겉보기엔 부모가 정상이라도 자손에게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후천적인 요인, 예를 들어 바이러스 감염, 뇌 손상, 선천성 기형 등으로 인해 뇌하수체가 파괴된 케이스에도 발생할 수 있다.

뇌하수체에서 성장호르몬뿐 아니라 갑상선자극호르몬, 성호르몬 관련 호르몬까지 함께 분비되므로, 성장호르몬 결핍이 있으면 그 외 호르몬들까지 영향을 받아 복합적인 증상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이 성장호르몬 결핍증이 무서운 이유이다.

작고 귀여운 모습 뒤에 숨은 이상 징후들

성장호르몬 결핍증은 주로 생후 2~4개월 정도에 증상이 시작된다. 처음에는 단순히 성장이 느리다고만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또래 개체들과의 차이는 점점 벌어진다. 몸이 길쭉하게 자라지 않고, 다리나 척추가 짧고 통통한 상태로 유지된다. 유치는 오래 남아있으며, 제때 빠지지 않아 영구치의 정상적인 배열에 방해가 된다. 성호르몬 부족으로 인해 암컷은 발정을 하지 않거나 발정 주기가 매우 불규칙하고, 수컷은 고환이 작거나 음낭이 발달하지 않은 상태로 남는다.

피부와 털의 상태에서도 뚜렷한 이상이 나타난다. 성장호르몬이 부족하면 피모 재생이 느려지고, 모근이 약해지면서 털이 쉽게 빠진다. 눈에 띄게 털이 빠지기 시작하고, 피부가 얇아져서 핑크빛 살이 그대로 보이거나, 몸 전체가 아이처럼 부드럽고 무털 상태로 바뀌기도 한다. 특히 털빠짐이 대칭적으로 양쪽에 생기거나, 엉덩이, 허벅지, 목 부위부터 시작된다면 성장호르몬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이외에도 식욕 저하, 무기력, 운동 기피, 잦은 피로, 사회성 저하 등 행동에서도 이상이 나타날 수 있다. 성장이 멈춘 채로 외형은 강아지인데 체력과 내장은 점점 약화되어 감염에도 취약해진다. 또한 간, 신장, 생식기 등도 발달이 늦어지거나 제대로 기능하지 않아 질병에 쉽게 노출된다.

보호자가 가장 흔히 놓치는 부분은 “그냥 덜 자란 것 같다”, “털이 유난히 느리게 나는 것 같다”, “조용한 성격인 줄 알았다”는 식의 인식이다. 따라서 이러한 놓치기 쉬운 부분들을 보호자가 인지하고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반려견의 질환을 확인할 수 있다.

진단은 수치와 직감의 조합

성장호르몬 결핍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호르몬 수치를 정밀하게 확인해야 한다.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혈액 내 IGF-1 수치를 측정하는 것이다. 이 수치는 성장호르몬의 분비량을 간접적으로 반영하며, 낮게 측정될 경우 성장호르몬 결핍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개체 간 편차가 존재하므로, 단일 수치만으로 진단하지는 않는다.

성장호르몬 자극 테스트라는 방식도 있다. 인슐린이나 클로니딘 같은 약제를 투여해 성장호르몬 분비를 자극하고, 일정 시간 간격으로 혈액을 채취해 반응을 관찰하는 방식이다. 이 검사는 전문적인 장비와 숙련된 수의사의 관리 하에 이루어져야 하며, 위급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또한 갑상선 기능 저하증과 감별이 중요하다. 성장호르몬 결핍과 갑상선 호르몬 결핍은 피모 문제와 성장 지연에서 유사한 증상을 보이기 때문에, 갑상선 호르몬(T4, TSH) 검사도 병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필요에 따라 복부 초음파, 방사선 검사, 심장 기능 검사 등도 함께 진행되어 성장 저해의 원인을 전반적으로 파악한다.

유전적 원인이 의심될 경우 DNA 분석을 통해 관련 유전자 이상을 확인하기도 한다. 특히 번식 전 개체에 대한 유전자 선별은 후속 세대에서의 예방 측면에서 매우 유의미하다.

치료와 일상 속 관리법

성장호르몬 결핍증은 치료가 어렵다고 알려졌지만, 조기 진단과 적절한 호르몬 보충 치료를 통해 상당한 호전이 가능하다. 가장 근본적인 치료는 외부에서 성장호르몬 제제를 주입하는 것이다. 사람용 성장호르몬 주사를 개에게 사용할 수 있으며, 주 2~3회 피하 주사로 투여한다. 투약 후 수개월 내에 피모 상태가 개선되고, 식욕과 활동성이 회복되는 사례가 많다. 단, 이 약물은 고가이며 장기적으로 사용할 경우 부작용이나 내성 문제가 있을 수 있으므로 수의사 지시에 따라 용량과 주기를 조절해야 한다.

갑상선 기능이 함께 저하된 경우, 갑상선 호르몬(T4) 보충제를 병행 투여한다. 성호르몬 기능도 결핍된 경우 난소 또는 고환 관련 호르몬도 일정 수준 유지해주는 약물 치료가 이뤄질 수 있다.

일상에서는 면역력이 약해진 강아지를 위한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다. 외부 바이러스 감염을 막기 위해 백신은 반드시 정기적으로 접종해야 하며, 지나친 운동은 피하면서도 적절한 자극과 산책은 유지하는 것이 좋다. 털빠짐과 피부 약화가 있는 경우엔 강아지 전용 보습제와 저자극 샴푸를 사용하고, 실내 습도와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음식은 고단백 저지방 사료를 기본으로 하며, 성장호르몬 결핍이 간에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간 기능을 보조하는 영양제를 병행하면 더 좋다. 혈당 조절이 잘 안 되는 경우도 있으므로, 하루 식사량을 나눠 소량씩 자주 먹이는 방식이 권장된다.

성장호르몬 결핍증은 흔하지 않은 질환이지만, 적절히 관리하면 아이가 평범에 가까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보호자가 “왜 아직도 이렇게 작지?”, “털이 왜 이렇지?”라는 작은 의문을 가볍게 넘기지 않고 행동에 옮기는 것, 그 한 걸음이 나의 사랑스러운 반려견의 생애를 바꿀 수 있다.